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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 you trying to save my soul?_나의 영혼을 구하러온 영화, 그리고 나

by ooook 2021.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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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1920년 미국 할리우드의 한 병원. 말을 타다 부상으로 하반신이 마비된 전문 스턴트맨 로이는 쇄골이 부러져 병원에 입원한 작은 꼬마 알렉산드리아와 친구가 된다. 어린 친구를 위해 로이는 매일 세상 끝 먼 곳에서 온 다섯 전사에 대한 환상적인 이야기를 들려 주고, 시간이 갈수록 현실과 환상은 서로 얽히고 뒤섞이게 되는데…

쌍둥이 동생을 잃은 "마스크 밴디트", 아내를 잃은 "인디언", 노예였던 "오타 벵가", 천재 "찰스 다윈", 폭파 전문가 "루이지". 5명의 영웅이 총독 "오디어스"를 찾아 복수하기 위해 전세계를 무대로 위험천만한 모험을 하는 '대서사시'가 펼쳐진다.

 

 

로이

 


주인공인 로이는 처음 도전한 스턴트에서 척추를 다쳐 하반신을 못쓰게 되었다.

실은 그 영화의 여주인공과 애인 사이였는데, 로이가 병원에 있는 사이 그 여자는 로이를 버리고 영화의 남주인공과 사귀게 된다.동료 배우가 병문안을 와서 위로의 말을 전하지만, 다리도 쓸 수 없게 되고 사랑하는 여인도 잃은 로이의 마음은 크게 상처를 입고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그는 급기야 자살을 생각하게 된다.

 

그 때 우연히 그 병원에 입원한 5살 꼬마와 만나게 되는데, 다리를 못 써서 이동하기가 어려워 자살도 여의치 않았던 로이는 이 어린아이를 이용해서 약병을 훔칠 계획을 세운다. 그것은 바로 꼬마와 친해진 다음 꼬마를 시켜 약을 훔쳐오게 하는 것. 약을 훔쳐오게 시킬 계획이 있기 때문에, 알렉산드리아가 가지고 다니는 '보물 상자'에 대해서 물을 때도 로이는 무의식 중에 (혹은 의도적으로) "그 속에 든 거 혹시 훔친 거니?"하고 묻기도 한다.


먼저 친해지기 위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꾸며 내는데, 영화의 아름다운 장면들은 이 꼬마아이 알렉산드리아가 상상하는 이미지가 펼쳐지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로이와 알렉산드리아의 상상 속에서 이미지가 뒤섞인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로이의 이야기속에 등장하는 '인디언'은 영화의 마지막에 나오는 영화 속 영화에 나온 배우로,

'눈썹을 만지는 습관이 있는' 아메리카 인디언을 말한 것이었는데,

알렉산드리아는 자신의 오렌지밭에서 함께 일하던 '인도인'을 대입해서 상상한다.

로이의 이야기 속에는 검은 옷을 입고 붉은 마스크를 착용한 '마스크 밴디트'를 중심으로 선명한 색상의 옷을 입은 다섯 명의 인물이 나오는데, 모두 총독 오디어스에게 원한이 있는 사람들로 복수를 위해 모였다.

 

 

 

모험을 떠나는 다섯 명의 인물

 

 

 

어느 정도 친해지고 또 이야기도 무르익어가자, 로이는 갑자기 하던 이야기를 끊고  알렉산드리아에게 "영어를 읽을 줄 아느냐" 고 묻는다. 알파벳을 겨우 읽을 줄 아는 알렉산드리아에게 종이를 보여주며 읽어보라고 하는데, 그 글자가 대충 휘갈겨 쓴 게 아니라 조금 꾸며져 있어서 그 글자를 쓰며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래서인지 알렉산드리아가 마지막의 E를 3'three'으로 읽는다. 하지만 로이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고, 그렇게 쓰인 약을 가져와달라고 부탁한다. 로이의 이야기를 계속 듣기 위해, 또 로이를 위해, 알렉산드리아는 조제실로 숨어들어가 로이가 원하는 약을 훔쳐 나온다.


로이는 약을 가져왔는지 묻는데, 알렉산드리아가 가져온 약병에는 약이 3알 뿐이었다! (사람이 죽는 것을 본 알렉산드리아가 어떤 불길함을 느끼고 나머지 약을 다 버린 것 같다.) 3알(three)만 가져오라고 하지 않았냐며 모르는 체하는 알렉산드리아에게 로이는 체념한 듯 다음 이야기를 이어간다.

한편 로이의 침대 맞은 편에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엄살이 심한 아저씨 환자가 하나 있는데, 늘 자기 병이 심상치 않다며 의사에게 앓는 소리를 하곤 했다. 로이는 그가 캐비닛에 저장한 약병의 존재를 알고, 알렉산드리아를 시켜 그 속에서 약을 꺼내오게 한다.

 

 

 

 


약을 먹은 로이는, 알렉산드리아에게 뜻모를 사과를 하고, 내일은 오지 말라고 말한 후, 다음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야기 속에서 블랙 밴디트는 한번씩 몹시 졸려오는 듯 고개를 떨구고 휘청거리곤 한다. 알렉산드리아가 이야기 속의 공주와 블랙 밴디트를 뽀뽀 시키라고 주문하기도 하는데, 로이는 '먼저 결혼부터 하고' 라고 대답하며 결혼식 장면이 열린다.

결혼식 도중 밴디트 일행은 함정에 빠졌다는 걸 알게 되고 사막 한가운데에 묶이게 된다. 마치 삶을 포기한 로이의 마음을 반영한 것처럼 밴디트는 탈출하기 위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

 

그러자 드디어 알렉산드리아가 그 이야기 속에 직접 출연하여 그들을 구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현실의 로이가 잠이 들어버려서 블랙 밴디트는 사막에 쓰러진 채로 깨어나지 않는다. 알렉산드리아는 블랙 밴디트처럼 잠들어버린 로이를 깨우다가 자리를 떠난다.

 

 

 


다음 날 누군가의 시체가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고 로이가 죽었다고 생각한 알렉산드리아는 울면서 로이의 침대가 있던 자리로 가는데, 로이가 죽은 것이 아니었다!

로이는 그대로 잠들어 있다가 알렉산드리아가 우는 소리를 듣고 깬다. 죽고 싶었는데 다시 깨어난 로이의 기분은 처참함 그 자체. 어제 앞 환자의 캐비닛에서 훔쳤던 약은 위약(placebo)으로 병원에서 엄살쟁이인 그에게 제공한 설탕덩어리였던 것이다.

분노에 휩싸여 발광하는 로이를 뒤로 하고 놀란 알렉산드리아는 간호사에게 떠밀려 자신의 병실로 돌아간다. 하지만 한참을 생각한 끝에 알렉산드리아는 로이가 잠을 못 자서 신경이 날카로워진 것이고, 로이가 원하는 약을 다시 구해주면 안정을 찾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시 약을 구하러 가는데, 그만 약을 꺼내다 떨어져 머리를 다치는 사고를 당한다.

알렉산드리아가 수술받는 장면은 인형극처럼 표현되는데 전혀 혐오스럽거나 잔인하지 않으면서 아이가 어떤 기분을 느끼고 있는지 공감이 가게 하는 상당히 인상적인 장면중의 하나이다.

 

 

 

 

 

드디어 눈을 뜬 알렉산드리아의 곁에는 슬픈 눈을 한 로이가 앉아있다. 그런 로이에게 알렉산드리아는 이야기를 계속 해달라고 한다.

그러자 로이는 모두 약을 구해오게 하려고 꾸며낸 이야기였을 뿐이라며 폭발하는데, 알렉산드리아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도 하지 못한다. 로이는 결국 이야기를 이어나가지만 이야기 속에서 밴디트들은 하나씩 죽어간다.

특히 '폭파전문가 루이지'는 발에 총을 맞은 후 자살하는 것처럼 폭탄을 터뜨려 죽는데,  그가 왜 죽음을 선택했냐는 알렉산드리아의 물음에 로이는 '다리를 쓰지 못하니까. 그렇게는 살 수 없어서.'라고 대답한다. 다름 아닌 로이 자신의 심리를 투영한 것이다.
 
이야기 속의 등장인물은 모두 죽고 밴디트조차 살려는 의지를 버리는데, 알렉산드리아가 그를 살려달라고 한다.

 

로이는 '이건 내 이야기니까' 내 마음대로 하겠다고 하지만 알렉산드리아는 '내 이야기도 돼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애가 그를 사랑해요.(She loves you)'라고 말한다.

이 때부터 밴디트의 딸이라는 설정으로 알렉산드리아가 본격적으로 로이의 이야기에 출연하게 되며,

이는 로이가 들려주던 이야기가 더 이상 로이 자신만의 것이 아닌, 알렉산드리아와 공유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로이는 밴디트를 살려내고 이야기를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한다.그 후에도 알렉산드리아는 스턴트맨 또는 단역으로 출연하는 로이를 생각하면서 모든 스턴트맨을 로이를 보듯 사랑스럽게 바라보게 된다.

 

 

영화의 오프닝

 

https://youtu.be/QhARR-zmTCE

 

 

트레일러와 오프닝의 배경 음악은 베토벤 교향곡 제7번 A장조 작품번호 92번 2악장 Allegretto.

로이가 사고를 당한 뒤 촬영장의 혼란스러운 모습을 그 시대 흑백 영화처럼 보여주고 있다.


 
느린 흑백 화면속의 물에 빠진 남자, 고속으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주위 사람들,
그리고 베토벤 교향곡의 음악을 깔린다. 추락한 남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주어진 오프닝은
어떤 영화가 펼쳐질 것인가 하는 궁금증을 유발한다.


이 영화는 ‘더 폴’로 지금까지 보았던 영화들 중에서 나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과 감동을 준 영화이다.
특히 ‘더 폴’의 인상적인 오프닝은 영화 제목인 ‘the fall'과 한 남자의 절망을 ‘추락’의 이미지로 형상화시켜 처음부터 절망적 상황을 극대화 했다고 볼 수 있다.

 

병원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하반신 마비를 당해 LA의 병원에 입원해 있는 스턴트맨 로이와 농장에서 사과를 따다가 팔이 부러져 입원한 꼬마 여자아이 알렉산드리아가 주인공이다.

 


두 주인공은 추락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삶의 희망을 잃고 무료한 병원생활에 지친 로이는 자신의 병실로 들어온 알렉산드리아에게 상상 속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야기의 목적은 하반신이 마비돼 애인을 잃고, 배우생활마저 끝난 자신의 절망을 끝내줄 모르핀을 구하는 것이다. 아라비안나이트의 공주가 왕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기 위해 1천 가지의 이야기를 지어냈다면,

 

로이는 죽기 위해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을 연상시키는 모험담을 매일매일 지어내는 것이다. 로이가 해주는 영웅들의 모험담이 궁금해서 안달난 알렉산드리아는 그의 자살을 위해 철저하게 이용되는 셈이다

 

 

 

 

영화는 액자식 구성이다.

 

추락한 남자의 외부이야기인 ‘더 폴’ 과 어린 소녀가 그리는 내부이야기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으로 이루어져있다.

 

액자 속의 이야기에서 다섯 영웅들은 악당 ‘오디어스’향한 복수를 위해 함께 모험을 떠난다. 오디어스 때문에 쌍둥이 동생을 잃은 ‘파란가면‘ 밴디드와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인디언, 오디어스의 노예였던 오타 벵가, 오디어스 때문에 인생의 목표인 나비를 잃은 천재 찰스 다윈, 그리고 오디어스의 추방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 폭파 전문가 루이지가 그들이다.

 

저마다의 사연으로 독재가 오디어스를 찾아 나선 영웅들은, 사실은 동화 속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밴디드, 즉 로이의 분열적 자아이다. 아내를 빼앗긴 인도인, 찰스 다윈의 날개 잃은 나비, 동생을 잃은 노예. 사회적 관계를 고립된 루이지는 결국  사랑하는 연인을 빼앗긴, 꿈을 잃어버린, 가족과의 관계, 사회적 관계를 상실한 루이의 내면의 상처가 형상화 된 것이다.

 

 

 

 

 

 

이러한 로이의 인물들과 이야기는 알렉산드리아의 상상을 기반으로 우리에게 보여진다. 그렇기에 알렉산드리아의 주변인들인 병원 간호사언니, 틀니 할아버지, X-ray 실 의사아저씨, 얼음장수, 오렌지 농장 아저씨 등 주위 평범한 사람들이 알렉산드리아의 상상에서 영웅이 되기도 악당이 되기도 한다. 환상과 현실이 뒤섞인 ‘더 폴’의 플롯과 아름다운 영상미는 영화 밖의 나조차도 그들과 함께 모험하는 기분을 들게 했다.

 

또한 외부와 내부 두 이야기가 상호영향을 미치는 것이 특히 독특했다. 그 예로 로이는 스페인 악센트를 구사하던 밴디드에게 말투를 바꿔달라는 알렉산드리아가 원하는 대로 이야기를 바꿔 준다.
 
하지만 ‘그’의 현실 속 절망으로 쓰여 진 이야기가 막바지로 다다를수록 영웅들은 하나둘씩 죽어나간다.

모든 것을 잃고 생의 남은 것은 오직 죽음뿐이던 현실의 로이에겐 영웅들의 죽음만이 마지막 결말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동화는 블루 밴디드, ‘그’만의 외로운 죽음이라는 비극으로 끝날 듯 했다.

 

하지만 알렉산드리아는 외친다.

 

  내 이야기도 돼요! 제발 죽지 말아요

 

 

 

나에게 이 외침은 “이제 당신의 삶은 내게도 중요한 이야기에요.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어요”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20살 직전 겨울, 나는 입시 실패로 인생의 첫 번째로 시련다운 실패를 겪어 절망에 빠져 있었다. 웃긴 영화를 봐도 슬프고 희망찬 영화를 봐도 전혀 힘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영상미가 예쁘다는 ‘더 폴’을 보게 되었다. 어줍지 않은 응원과 동정보다 아무 생각도 안하는 게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이가 알렉산드리아에게 “Are you trying to save my soul?”라고

물어보는 순간부터 영화를 보는 내내 내 영혼이 구원받는 기분이었다.

 

알렉산드리아의 순수함은 로이뿐만 아니라 나의 영혼까지 구원했고

‘더 폴’의 담담한 위로와 공감은 절망의 나락으로 추락하는 모든 영혼들을 구했다.

삶의 추락과 회생을 정말 아름답게 그려낸 ‘더 폴’은 나도 이 시련을 아름답게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다.

 

 


 
이 영화는 구원의 서사시일 뿐만 아니라

영화가 빚을 진 것들에 대한 오마주이다.


 

 

 

영화 이전 시대의 구전문학과 스턴트맨, 단역에 대한 존경을 표한 것이다. 마지막 엔딩에서 베토벤과 함께 무성 흑백 필름이 상영될 때 그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또한 이 영화는 감독의 열정과 제작과정 자체로도 칭송받을 만하다. 특수효과로 러닝타임 대부분을 장식한 할리우드산 블록버스터가 주류 영화계에서 감독 타셈 싱은 어떠한 특수효과도 사용하지 않고  모든 로케이션을 직접 찾아다녔다.

 

스코틀랜드를 시작으로 파리·인도·캄보디아·볼리비아·나미비아·아르헨티나·중국·터키·남아프리카·이탈리아·체코 등 28개국 로케이션을 위한 장소 섭외에만 17년, 판권을 구입하는 데 걸린 시간이 15년, 딱 맞는 주인공을 찾기까지 7년, 실제 촬영기간 4년 반이 걸렸다.

 

 

 


이러한 싱의 집착은 ‘더 폴’이 단순한 ‘판타지 영화’나 ‘모험영화’가 아닌 그의 평생의 염원과 꿈이 담긴 영화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 영화의 영상의 모든 일분일초가 좋다.

 

황홀한 영상미뿐만 아니라 인상적인 오프닝과 독특한 서사구조, 주인공들 간의 따듯한 시선, 절망과 추락에서 다시 비상하는 스토리, 그 모든 것을 함축하는 엔딩까지 아름다웠다.

 

 

 

 

 

 

이미 이 영화는 내 삶의 기반이고 이 스토리는 ‘내 것’이 되었다

 


‘더 폴’은 한마디로 추락과 동아줄의 서사시이다. 그리고 어쩌면 나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아마 나는 살면서 영화 속에서 로이처럼 떨어지고, 떨어지고, 또 떨어질 것이다.

 

 

 

인간의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처럼

 

인간의 인생에서 '실패', 추락이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또다시 추락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을 향해서 기꺼이 또 뛰어 내려고, 도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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